서안동농업협동조합

서안동농협협동조합은 항상 여러분 곁에 함께 하겠습니다.

하회마을을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사전에 하회에 관한 지식이 없이 유명하다니까, 한번 와보자는 식으로 하회마을에 들렀다가 앞서가는 사람들 따라서 마을 안 한 바퀴를 돌아보고는 별 것도 없다면서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차분하게 준비하여 코스별로 알뜰히 돌아보면서 가장 한국적인것, 배워야 할것, 지켜야 할 것, 새로워져야 할 것을 찾으신다면 헛 걸음은 아닐것입니다.

    하회마을 전체 건물의 전경을 하늘에서 촬영
    • 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122호(1984.1.10)
    • 주소 :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종가길 40 (구. 하회리 749-1)
    • 거리 : 25km
    • 버스타기 : 홈플러스 안동점 건너편 46번
    • 병산서원 버스 타기
      안동출발 행선지출발
      06:20 . 07:50. 09:00 . 10:10 07:15 . 09:20 . 10:10. 11:10
      11:00 . 12:10. 13:20 . 14:20 12:20 . 13:20. 14:50 . 15:50
      15:20. 16:10 . 17:20. 18:20 16:30 . 17:10. 18:20. 19:10
    하회마을 위치와 근처관광지(봉정사아래 죽헌고택아래 서후면사무소아래 학봉종택아래  하위지사당그리고 그 아래 하회마을이 있다. 죽헌 고택 오른쪽 옆으로는 안동포전시관이 있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 소요시간 : 버스(50분) 택시(35분)
    • 문의전화 : 하회마을관리소054)854-3669
    • 관람료
    • 하회마을 관람료
        개 인 단체(30명이상)
      어른 3,000 2,500
      청소년 및 군경 1,500 1,200
      어린이 1,000 900
    • 1. 어린이 : 7세 이상 12에 이하인 사람
    • 2. 청소년 : 13세 이상 18세 이하인 사람
    • 3. 군 경 : 정복을 입은 군경(단, 군인은 하사관 이하)
    • 4. 어 른 : 19세 이상 64세 이하인 사람
    • 5. 단 체 : 유로관람객 30인 이상이 동일목적으로 동시에 입장하는 경우
내력

고려때 부터 허씨가 터를 잡고, 안씨가 살았다. 조선조 초기부터 유씨가 동족부락(同族部落)을 이루며 살고 있는 하회 마을은 낙동강이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형상을 이루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 마을 사람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며, 풍부한 물과 넓은 들에서 얻어지는 경제적 혜택속에서 오랜동안 안녕을 누리며, 하회탈과 징비록 같은 국보와 양진당 ,충효당 같은 보물급 문화재는 물론, 많은 민속자료의 유형문화재 (有形文化財)를 남기고 있고, 양반과 선비 들이 여름날 부용대를 배경으로 풍류를 즐기던 선유줄불놀이와 농민과 상민들이 즐겨놀던 하회 탈놀이 같은 무형문화재 (無形文化財)를 남기고 있으며, 또한 서애선생(西厓 先生)같은 대정치 가(大政治家)를 배출시킴으로 하회를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많은 문화재들은 하회와 같은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조화가 되어 만들어질수 있는 독특한 문화재들이다. 아직도 옛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하회(河回)마을을 마을 그자체를 문화재로 보호하기 위해 1984년부터 민속마을로 지정 보존하고 있다.

하회와 풍수지리설

하회마을에 들어와서 살았던 3성씨들은 모두가 상당한 인물들이 길지(吉地)를 찾아서 풍수지리설이나 마을의 자연 경관이 좋아서 터를 잡은 것 같다. 농경사회에서 경제적 여건으로 경작지가 많은 것도 아니고, 지리적으로는 강이 마을을 돌아서 흘러 감으로 오지 이기 때문이다. 김해허씨는 허정승(그묘지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이 조정에서 물러나 팔도의 경치 좋은곳을 유람 하든중 하회의터가 너무 좋아서 정착했고, 광주안씨들은 평양감사를 지낸 안성이 경상 감사로 부임하여 각 고을을 순시 하든중 하회 에 와보니 너무 좋아서 터를 잡았고, 풍산류씨들은 공조전서 류종혜 공이 풍산읍 상리에 살다가 풍수에 밝은 지사(地師)를 찾아 가서 택지를 구하여 지금의 마을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러면 하회의 풍수지리설은 어떤 것들일까?

태극설
낙동강이 S자형을 이루고 일월산맥과 소백산맥이 강을 사이에두고 태극모양을 이루어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을 이루었으니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는 그의저서 태극도설 에서 우주의 생성 인륜의 근원을 논했으니 주자학의 근원이며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부용대 위에서 지금의 마을모양이 연꽃이 물위에 떠 오른 형상이라는뜻에서 불교적인 영향을 생각할 수 있고
다리미 형국
화산에서 내려다 보면 옛날 숯불을 담아 쓰던 둥글고 긴 나무 자루가 달린 다리미형국 이라 해서 다리미는 구멍이 뚫어지면 옷이 타는 것이니 마을에 샘을 파면 안된다 해서 강물을 생활용수로 썼다.그러나 지금은 지하수를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행주형 (行舟形)
연화 부수형을 옆에서 보면 배가 떠나가는 형상이라는 뜻
강물의 역수(逆水)
낙동강 700리에 물이 역수하는곳이 두 곳이니 퇴계선생이 태어난 곳과 하회 부용대 밑이 물이 역수 하는곳이 어서 서애선생 같은 인물이 났다고 한다.
상세소개
  • 양진당(養眞當) - 보물 제306호
    하회 풍산 류씨의 대종택으로, 문경공(文敬公)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선생의 종택이기도 하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 지붕 목조와가인데, 높은 축대 위에 세워져 누각과 같은 자태를 드러낸다. 사랑채 정면에는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당당하게 게판되어 있는데, 입암은 겸암 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 선 생을 말한다. 현재 남아 있는 이 건물은 조선초에 축조된 것으로 당호로 쓰이는 양진당은 겸암 선생의 6대손인 영(泳)공의 호에서 취한 것이다. 양진당 현판은 근세 사람 최동진의 자필이다. 자좌오향(子坐午向,정남향)의 남향집이며 99칸으로 전해오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 있다. 양진당의 사당은 크고 작은 두 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입암 류중영 선생의 불천위(不遷位) 사당이며, 하나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검암 류운룡 선생의 불천위사당이다. 이처럼 풍산 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에는 두 위(位)를 모시고 있다. 겸암 선생 불천위 사당 담 넘어로는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듯 수령이 800여년 임상 된 거대한 느티나무가 보이는데, 동신으로 모시는 '삼신당'이 자리잡고 있다. 학록정사 옆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다.
  • 충효당(忠孝堂) - 보물 제414호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의 종택이다. 선생이 삼칸 초옥(草屋)인 농환재(弄丸齎, 풍산읍 서미리)에서 별세한 위 일생을 청백(淸白)하게 지낸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수많은 유림들의 도움을 받아 장손인 졸재 원지(元之)공이 처음 창건하였고, 그의 아들 의하(宜河)공이 확장 중수한 조선 중엽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충효당 전서체(篆書體)현판은 조선 중기의 명필인 우정 미수(眉受) 허목(許穆 : 1595~1682)의 친필이다. 충효당 기문은 1706년(숙종32)연안인 식산(息山)이만부(李萬敷)가 지은 것을 282년 뒤인 1988년에 서하인(西河人)임창순(任昌淳)의 글씨로 게판해 두고 있다. 충효당이란 당호는 서애 선생의 증손자인 익찬 벼슬을 역임한 우눌재(愚訥齋) 류의하(柳宜河)대에 식산 이만부에게 청해 완성되었다. 모두 52칸이 남아 있다. 종택에는 가장 신선하나 공간인 불천위 사당과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이 있다. 불천위 사당 앞에는 일명 만지송이 장관이며 종택 행랑채 앞마당에는 다소 원형이 손상된 불탑이 복원되어 있는데, 이탑은 원래 서애선생의 재사인 상로재(霜露齋) 뒷편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 하동고택(河東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 177호
    이집은 서애파로 용궁현감을 지낸 류교목공이 현종 2년에 창건하였다. 24칸의 활궁자(弓)자형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한 채로 이어져 있는 민도리 집이다. 하회 동쪽에 있다는 의미에서 하동고택이라 부른다. 이 집은 최근 행정당국에 의해'하회마을 선비의 집'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회마을을 찾아 조선 선비의 전형적인 모습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겸암 선생의 후손으로 신구 학문에 일가를 이룬 이집 주인 우천(友川)류단하(柳端夏)옹을 모신 것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일가를 이룬 선비들이 수없이 배출되었을 테지만 지금은 행정당국에 의해 이처럼 현판을 붙여 그나마 일반인들이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하회마을을 찾아서 무엇을 보고 얻을 것인가. 이제는 그것을 생각할 때가 아닌가.
  • 북촌댁(河回北村宅) - 중요민속자료 제 84호
    이 집은 경상도 도사를 지낸 석호 류도성공이 철종13년(1862)에 창건한 것으로 안채와 사랑채 사당채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양반집이다. 대문간이 7칸으로 그 중앙에는 솟을대문을 두었으며 몸채와 대문간과는 축을 달리하고 있다. 몸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앞 뒤로 배치되어 있으나 하나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는 입구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납도리에 흩처마로 비교적 수식이 없는 편이다. 전체적으로 높게 건축되어 영남에서도 이렇게 웅장한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54칸이 남아 있다. 북촌댁은 웅장한 안채가 인상적이다. 화산으로 옮겨 모신 입향조의 무덤에서 마을을 바라볼 때 건물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이 바로 북촌댁 안채다. 안채에는 마을 사람들이 신행올 때도 이용되었음직한 가마가 높은 시렁에 올려져 있다. 북촌댁은 건물도 건물이려니와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음은 물론 10책의 방대한 문집까지 남긴 학서(鶴棲) 류이좌(柳怡佐)와 그의 손자로 추천을 받아 경상도 도사직에까지 이른 석호(石湖) 류도성(柳道性)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도서가 소장되어 오늘에 전하나 주인이 외처에 살아 규모조차 짐작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한석봉 글씨를 모각한 화경당(和敬堂)은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서 바로 보이나 사랑 별채 문틈으로 주의 깊게 보아야 겨우 석호(石糊)라는 현판을 만날 수 있다.
  • 남촌댁(河回南村宅) - 중요민속자료 제 90호
    정종21년(1797) 형조좌랑 류기영공이 건립한 건물이다. 1954년 화재로 인해 안채와 사랑채가 소실되고 현재는 문간채와 별당 그리고 사당만이 남아 있다. 문간채는 솟을대문이며 안채와 사랑채의 굴뚝을 통로로 연결해 한 곳으로 뽑아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사당채 부근에 자생하는 대나무 숲은 한낮에도 으슥한 분위기를 자아낼 정도로 우거져있다. 사당 뜰에도대나무가 무성하다.남촌을 대표한다는 이 건물은 그 원형을 보았을 노인들을 통해 들으면 참으로 아름다웠음이 분명하다.그야말로 남촌을 대표할 만한 건물이었다는 것이다. 이름까지 너무나 정겨운 남촌댁은 주인이 외처에 살아 일반인들에게는 격리되어 있다. 더욱 아쉬운 점이있다. 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건물도 건물이지만 도서와 골동이 수없이 많아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하는 수준이었다 한다. 그러나 그 많던 도서와 진귀한 골동들 상당부분이 화재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하회에서도 유일한 왕대나무 숲을 만날수 있는 집이다. 다문 문이 늘 잠겨져 있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한다면 왕대나무숲이 울창한 모습을 바라보며 돌담질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곳이 남촌댁이다.
  • 주일재(河回主一齋) - 중요민속자료 제 91호
    이 집은 서애 선생의 증손 류만하공이 충효당에서 분가할 때 지은 것으로, 그의 아들 주일재 류후장(1650~1706)공이 증축한 것이다. 주일재공은 퇴계 선생의 도학을 사숙(私淑)하여 일찍이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고 벼슬에 나아가 자의에 이르렀다. 한 일자(一)형 사랑채와 안채 문간채와 사당을 갖춘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다. 주일재는 늘 문이 잠겨 있다. 필자가 주일재의 생동하는 모습을 임재해 교수가 지은 [안동하회마을] 87쪽에 소개된 주일재에서 잔치하는 모습이 유일하다. 이 한장의 사진을 통해 다시금 일가 친척들이 모여 흥겹게 살아가던 하회의 옛모습이 더욱 궁금해지고 보고 싶어진다.
  • 류시주가옥(河回柳時柱家屋)- 중요민속자료 제 87호
    조선 중기의 건축물로 류도관공의 호를 따서 작천고택(鵲泉古宅)이라 불렀으나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당초에는 두 동으로 구성되었으나 1934년 대홍수로 유실되고 지금은 한 일자(一)형 안채만 남아 있다.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집으로 우측 끝의 사랑방으로 쓰는 것과 안쪽의 방으로 이어지는 앞마당에 작은 토담을 두어 사랑 손님과 안채의 부녀들이 서로 볼 수 없게 배려한 특징을 갖고 있다. 주인이 살고 있는 집이다. 또한 솜씨 있는 안주인이 만들어 내는 맛깔스런 손국시 한 그릇을 맛볼 수 있는 집이기도 하다.
  • NH쇼핑 서안동농협 장터
  • 양반살
  • 농협풍산김치